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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은여기에남겨

무거운 마음과 가벼운 즐거움

한 달 여의 서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코끝을 가르는 매운 바람을 맞고 다니다 마닐라 공항을 나서는 순간 훅~하고 밀어닥치는 물먹은 공기방울들에 그래, 이랬었구나 하며 다시금 이곳의 현실을 깨달았다.

한국에 대한 뉴스를 보니 연쇄살인범도 문제지만, 수출 감소에 대한 압박으로 지경부 차관이 과로사 했다는 뉴스기사에 마음이 무겁다. 한국 방문은 많은 무거움을 전달해줬다. 당장은 올 상반기를 최대의 고비점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세계경제 악화 일로에 있는 지금 누구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시기.
해서, 나도 나름의 각오를 하고 왔다. 첫째는 이번 집 계약이 끝나면 무조건 2만 페소 이하의 집으로 이사한다, 이고, 둘째는 쓸데 없는 물건은 절대로 사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에서 잘 놀자 이다. 사실 그렇다고 이제껏 호화로운 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더이상 줄일 수 있을까 싶지만... 이렇게 경제적 압박을 받다보면 스트레스가 더 쌓이기 마련인데 그것에서 홀가분해지자도 나름 각오라면 각오랄까.

이제 내 친구들은 대부분 학부형이 되었다. 한국의 교육현실을 생각하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걸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다. 나역시 돌아갔을 때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만.

어쨌든 지난 6개월간은 내 힘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것들에 대한 고민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았다면,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생각.
학교를 알아볼 것이고 운전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다짐도 했다.


한국여행에서 기뻤던 점은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 때문이다.
대학원 우리 연구실 사람들, 특히 그중에서 동기님들. 아무래도 생각이 잘 통하니까, 늘 즐거워.
2003년과 4년에 같이 일했던 도시역사연구실 사람들, 나보다 어리지만 모두들 열심이라 생기도 넘치고 나름의 각성제가 된다.
내 인생에 참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교수님. 요즘 들어 나라 걱정이 더욱 심하셔서 나 역시 마음 짠함.
내 사회생활의 첫 사수, 기운 없어 보이는 듯 해 걱정했으나 눈빛이나 연구열은 여전하신 듯 하여 기쁨.
자신의 하루를 나를 위해 온전히 비워준 선배, 나한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뿌듯. 두고두고 고마울 듯.
사무실 차린 선배와 후배, 대박나라는 상투적인 응원보다는 바른 세상을 위한 일을 하고 있음에 더욱 응원을.
이미 잘 자리 잡은 텐바이텐 친구들. 친구들과 일하는게 부럽기도 하고. ㅋㅋ
건축과 여자 동기들. 일부는 사회생활, 일부는 가정생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친구들이지만 역시 친구는 좋더라.
아이 둘 키우고 있는 오래된 친구. 남매가 다정하게 잘 놀아서 부럽더군. ㅋㅋ
남편과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동기, 후배. 제발 사무실 잘 돌아가게 모두 힘냅시다. 끄긍.
밥 사준 사촌동생. 사실 밥 얻어먹고 나서 무지 찝찝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사줬어야 했는데...쩝.
밥 얻어먹은 사촌 오빠. 그날 너무 비싼 거 먹었다고요. -_- 매드포 갈릭 다시는 안 가리.
냉면 사준 로테르담 지인들. 그리고 동참하여 커피 대접해준 도령님. 해외생활 경험자들이라 뭘 먹고 싶어하는 지 안다니깐. ㅋㅋ
2008년 상반기 학교 동기님들. 가정주부지만 지금도 공부하시고 가르치시는 열정을 배울 수 있었던 인연. 멕시코 이민기도 즐거웠어요.
네덜란드 인연인 재즈보컬리스트, 베이시스트. 여전히 멋진 공연과 연주. 홍대에서 오랜만에 공연봐서 정말 즐거웠어요. 그날은 눈도 내리고.
얼굴은 못보고 통화만 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나줘서 고맙고 안부 전해줘서 고마운 사람들.
아직 나 죽지 않았구나. 어쨌든 약발이 꽤 갈 듯하다. 필리핀에서도,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