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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미사 강론을 듣다가 깨달음

minimalb 2014. 8. 20. 23:37


어찌어찌하다보니, 광복절날 광화문에서 있었던 시복미사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참석했다는 것에 심히 부끄럽고 후회하기도 했지만, 결국 참석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소위 말하는 냉담자, 즉 성당에 나가지 않고 있는 사람이고, 믿음도 많이 퇴색돼 있는 상황. 성찬의식에 참여 못함. 핑계로 미사의 끝까지 있지는 않았음. ㅠㅠ) 

대한민국에서 천주교의 위치는 좀 색다르다. 일단 전파 경로도 세계 천주교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방식, 즉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포교를 한 게 아니라,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배워온(?) 종교라는 점이다. 로마 카톨릭에서 대한민국을 보는 눈이 사랑스러운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자신들이 피흘리지 않았는데도 전파가 됐으니...그리고 작금에는 대한민국에서 대체로 기독교보다 천주교에 호의적인 분위기. 천주교의 보수성을 타파하고자 개신교가 나왔음에도, 한국에서는 천주교가 덜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보수적인 천주교는 의식(의례)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설교, 즉 목사의 말씀을 중시하는 개신교와 달리 모든 의례절차(죄의고백-말씀-강론-신앙고백-성찬-친교 등, 나이롱 신자다보니 정확한 절차도 기억나지 않는군)가 모두 중요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신부님의 강론은 목사님의 설교보다 형식적으로 흐를 때가 많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교황님의 강론은 특별할 것 같아 버텨봤다. 광복절 시복미사는, 천주교가 이땅에 들어온 최초의 시기에 순교한 사람들을 복자(성인 다음의 위치)로 인정해주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교황님의 강론은 순교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면 순교, 박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이 부분이 가끔 오해와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 중에서 포교 중 비난 받는 것을 순교와 박해에 비유하며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비난할 수록 그것은 박해이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순교자들을 칭송하는 교황님의 강론에서 이러한 우려가 생길 무렵, 깨우침을 주는 말씀을 한마디 하셨다. 

"이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을 분리하는 데 대한 그들의 거부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형제들의 필요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말이 좀 꼬여있는 것 같지만, 결국 하느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이웃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일부 기독교에서는 배타적이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나는 왜 구한말 지식인들이 조상을 섬기는 전통과 싸우면서까지 서양종교를 들여와 믿으려 했을까 하는 데 의문이 있었다. 당시 가장 큰 논란은 제사 거부였다. 그들이 추구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가 궁금했던 것. 

교황님의 강론을 듣다가 내가 생각하게 된 하나의 가정은, 그들(순교자들)이 조상숭배를 거부한 것을 앞서 박해 받기 위해 행동하는, 어떤 왜곡된 신앙의 발로로 해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많은 종교는 자아성찰적 성격 보다는 기복적 성격이 강하다. 조상숭배에서 보여지는 기복성은 한 가문에 한정돼 있다. 즉 내 자식, 내 자손을 잘 봐달라고 하는 마음에 치러지는 의식일 때가 많지 않은가. 물론 내 조상이 다른 사람을 챙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데 그들이 천주라는 신을 믿고 따름으로써 내 가족만 잘되는 게 아니라 이웃 모두가 잘 살수 있다는 데 주목하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조상을 섬겨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최초 제사를 거부했던 그들이 생각하는 이웃이 교회라는 공동체(개인적으로는 이 테두리가 너무 싫지만)에 한정돼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내 자신과 내 가정만을 위한 것을 넘어선, 이웃 전체를 위한 선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거부한 것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결론은 그래서 천주교가 좋다, 혹은 천주교를 믿으라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호기심 같은거고... 당시 그들이 천주교라는 종교를 통해 무엇을 추구했고, 거기서 현재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였다는 개인적인 소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