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은여기에남겨

택시를 타다.

minimalb 2008. 8. 1. 10:02

나같은 사람에겐 도시를 걸어다니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답답한 일 중의 하나다. 왜 못 걸어다니냐고 하면, 음, 현재는 걸어다니기에 너무 덥고(^^;;)...라기 보다는 일단 홀홀단신이면 상관이 없는데,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이 도시가 좀 위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는 대중교통이 매우 열악하여 발이 없는 나로써는 답답하기 그지 없다. 메트로가 있기는 한데 노선이 몇 개 안되는 것 같고(내가 사는 지역과 상관없는 곳으로만 다니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지프니인데, 그게 쫌 위험하단다.

  필리피노들의 가장 보편적인 교통수단이자, 필리핀의 독특한 교통수단이 지프니인지라 어떤 사람들은 필리핀 여행이나 생활에서 꼭 이용해보라고 한다. 또 화려한 외관으로 눈길을 사로잡기 그만이고,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무척 호기심을 느끼며 좋아한다. 그런데  이게 왜 위험하냐면, 거기 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일 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편 사무실 직원이 주급을 타서 지프니에 올라탔다가 강도를 당했다는데, 지프니에서 바로 옆에 사람이 칼을 들이밀고 돈을 요구할 때 주변에서는 아무도 말려주지 못하고 운전사도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냥 눈뜨고 당했다는 것이다. 외국인에게는 아무래도 그런 위험이 더할 수 있겠지.

근처 쿠바오라고 필리피노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장이 있어서 갈 기회가 있었는데, 도우미 아줌마라 같이 나선지라 지프니를 함 타볼까 했는데, 남편이 애 데리고 절대 안된다고 하도 만류해서 포기했다. 때문에 지프니는 아직 못 타봤다는 것.

어쨌든 그래서 필요하면 택시를 타라고 하는데, 택시는 안전한 편이지만,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하는 기사가 종종 있다는 것. 그리고 차 자체가 무척 후지다. 그게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하는데...

처음 택시 탔을 때의 경험은 바로 그 쿠바오를 갈 때 지프니 대신 급한 마음에 잡아탄 택시다. 정말 가다가 푹 주저앉을 것만 같은 상태였다. 곧장 폐차장으로 가야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덜덜덜덜 굴러가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차 문에는 에어콘이라고 써 있지만, 에어콘이 나오는지 싶을 정도. 역시나 찬이가 "엄마, 더워"라고 칭얼거렸다.
이후에는 좀 괜찮은 택시를 타보려고 나름 가렸었다. 외관이 후져보이는 차는 안타곤 했던 것.
그러던 어제, 집어탄 택시는 문제의 택시였다.
나름 이스트우드에 들어오는 택시는 괜찮은 편인 것 같았고, 외관도 괜찮아보여서 택시를 잡아탔다. 그런데 이 기사, 내가 말한 목적지를 모르겠단다. 오르티가스 시내에서 꽤 유명한 곳이라 웬만한 기사는 다 알던데 뭐 이런 어벙한 기사가 다 있을까 싶어서 의심하던 차인데 주변에 다른 큰 건물을 이야기하길래 알았다 그리로 가자 그러면. 하고 탔다.
원래 이스트우드 시티를 한바퀴 도는 셔틀버스가 있는데 그 셔틀을 타고 시티 입구로 가면 택시가 많지만, 시티 입구보다는 우리 집 앞이 큰 길로 나가기에 가까와서 일부러 집앞에서 택시를 탄 거였다. 그런데, 이 택시가 도로 시티 입구로 지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왜 저리로 안가냐고 했더니, 몰랐다고 하면서 유턴을 할 거라고 한다. 그러는 사이 시동 정지. -_-;; 슬슬 불안이 엄습한다.  
우리 집 앞에서 시내를 가려면, 일단 큰 길에서 고가 밑 지점에 가서 유턴을 해야한다. 그런데 이 기사, 웁스 하더니 고가를 타버리고 말았다. -_-;;
고가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어딘지도 잘 모르고, 그리 안전한 지역은 아니었던 기억이라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떻게든 만회하려던 기사가 주유소로 진입해 회전을 꾀했다. 그러나 다시 시동 정지. -_-;;
안되겠다 싶어서, 그냥 내리겠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자기는 아무래도 차를 정비해야겠다고 하면서 그나마 순순히 내려줬다.
주유소니까 안전하게 느껴져서 일단 애를 데리고 내렸다. 비는 부슬부슬.. 우산을 펴들었으나, 비를 피하겠다는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주유소로 접근하는 택시는 없었다. 아무래도 길을 건너야할 것 같았다. 길에는 구걸하는 필리피노들이 보였다.
길을 건넜으나 인도도 무지 협소하고 바로 옆은 길다란 담장만이 있을 뿐이었다. 과연 택시를 탈 수 있을 것인가 걱정스러웠는데 찬이가 손을 꼭 잡는다. 녀석도 긴장이 느껴진걸까. 우산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누가 쓰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지프니들만이 손을 흔들며 타라고 한다. 여기서 괜히 당황한 척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본다. 에잇... 내가 왜 이리 겁쟁이가 됐지...
오래지 않아서 택시가 오는게 보였는데 모두 사람들이 타고 있는 택시였다. 흐흑..
다시 지프니의 행렬이 진나고, 한참 후에 택시가 오는게 보였다. 이번엔 택시가 좋은지  후진지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일단 집어 탔는데, 이번 택시 기사는 열심히 핸드폰으로 문자를 날리고 있었다. 운전하다 말고...-_-;; 가슴을 쓸어내리며, "찬아, 무서웠어?"라고 하자 찬 왈 "응, 레미콘이 안 돌아가서 안무서웠어."라고 한다. 녀석은 주변 정황이 아니라 좁은 인도 탓에 코앞으로 지나가게 된 레미콘에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
어쨌거나 다행히도 무사히 목적지에 당도, 남편과 무사히 만났다. 남편도 그사이에 전화를 여러통. ㅋㅋ 아유. 다시는 택시 타고 싶지 않아. -_-;; 그러나 어쩔 수 있나요. 운전사를 두지 않는 이상.

지프니 말고 버스가 다니기는 하는데 주로 시외버스 같이 멀리 다니는 것들뿐이 못 본것 같아서 남편에게 물었더니 버스가 다닐 만큼 넓은 도로가 많지 않아서 란다.
지프니와 메트로를 언젠가 시도해 보리라. 하지만 지금은 아님.